‘어른’은 못 되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 – 하지현(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른’은 못 되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 – 하지현(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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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별 생각 없이 사용하던 이모티콘 하나도 중년층과 청년층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오늘 수고했어요^^”라고 문자를 보내면서, 드라이하고 공무적 업무명령 같은 느낌을 피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웃으면서 말하는 표정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받는 사람은“ 웃고 있지만 뒤가 서늘한 기분”, “ 썩소(썩은 미소)”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오독(誤讀)에는 문화적 세대 차이보다는 이미 형성된 권력관계의 기울기에 따른 인식 차이가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윗사람인 어른은 나름대로 친절하게 대한다고 하는데, 아랫사람인 젊은이가 느끼기에는 학급 일진이 웃으며 다가와서“ 내가 빵 사오라고 하는데 기분 나쁘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막상 그런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런 간극은 점점 벌어져서 어느새 두 개의 광장이 되고, 너무나 딴 세계의 사람같이 되어버릴 징후마저 보인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다른 존재로 바라보며 혐오감과 위협감을 느끼는 것은 양쪽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 문이 열렸을 때 승객이 내리기도 전에 막무가내로 가운데로 밀고 들어와 승차하는 나이든 사람을 볼 때 짜증과 분노가 올라오는 것은 어느덧 개인의 무례함을 넘어 집단적 세대 전체의 문제라는 확신으로까지 일반화되는 중이다. 이건 아니지 않을까?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을 ‘꼰대’라고 말한다.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너희는 그러면 안 돼”, “ 내가 너희 나이 때는 이건 진짜 쉽게 했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자꾸 가르치려고만 든다. 세상이 바뀐 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과거의 자기 방식만을 고집한다. 그러니 이미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그들을 어른이라 여기고 그들의 경험치를 내 것으로 만들려 하기보다, 꼰대라 부르며 나와는 유전자부터가 완전히 다른 에일리언으로 보려고 한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다른 존재로 인식해야 덜 가슴 아프고, 짜증을 덜 내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이런 꼰대를 그나마 잘 봐줘서 호칭하는 것이‘ 아재’다. ‘아재개그’에는 그마나 많이 참아줘서 귀여운 이미지로 포장해준 인고의 노력이 들어 있을 뿐, 기본적으로 ‘저들은 우리와 달라’라는 본질은 그대로다. 아재라 불린다고 기뻐해서는 안 된다. ‘어른’이라 불리고 싶은, 생물학적 연령이 중년을 넘어서는 이들이여, 최소한‘ 아재’로 애써 포장되거나 나아가 ‘꼰대’로 불리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야마다 레이지는 일본의 만화가로, 그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꼰대가 되지 않고 자기 나이 값을 하는 존경받는 ‘어른의 의무’를 3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만나온 일본의 존경할 만한 괜찮은 어른들의 특징으로‘ 불평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를 꼽았다.
저자는 세상이 바뀌어서 과거 농경사회부터 근대까지 이어온 ‘나이가 많으면 아무래도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으니 배울 게 있다’는 오래된 믿음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보가 넘치고, 꼭 어른에게 도제식으로 무릎 꿇고 배우지 않아도 지식을 얻고 경험치를 높일 수 있는 다른 방법도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사람보다 나을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나이 많은 이들은 그 변화를 전혀 모른 채 살고 있으며, 어린 것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불평할 뿐이다. 저자는 “아무 생각도 없을 리 없고, 젊은이들은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지만 연장자에게 보여주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즉 “당신이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혹시 그들이 ‘말해도 모른다’고 당신을 포기했기 때문은 아닐까요”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고 존경받고 싶다면 본인의 태도와 행동부터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젊은 사람들 붙잡아놓고 하는 말이 혹시 세상에 대한 이유 없는 불평불만은 아닌지, 나의 배설은 아닌지 고민해보라고 조언하다. “나의 자랑은 삼가고, 상대방이 자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연장자의 기본자세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요새 윗사람일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지 않는가. 그들에게 뭘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지 말고, 그들이 만나서 내 말을 가만히 들어주면 그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그들이 최대한의 예를 차리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지, 자기 경험에 도취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과 화로 가득 차 있지 않고,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그 사람은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잘 살아온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젊은 사람들이 볼 때 ‘멋지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게 마련이다. 내 경험을 장광설로 늘어놓기보다 우직하게 자기 인생을 잘 만들어내면, 그런 만족과 성취는 높은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후회와 죄책감, 분노와 우울에 가득 찬 표정보다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일수록 일상의 기분은 좋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묘하면서 적확한 스탠더드가 된다. 저 사람을 어른으로 보고 대접하고 따를 만한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요새 젊은 것들은 이해할 수 없어”라는 푸념을 하며 같은 나이의 연장자들끼리 모여서 신세한탄을 하는 것은 어른 대접받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어른들이 먼저 “고수해온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고, 젊은 세대에 피해를 주는 것이 있다면 기득권을 과감히 버려야” 비로소 젊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 제안한다.
평소 젊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은 욕구는 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한 사람, 뭔가 그들과 겉돌고 있는 것이 점차 확연해지며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띠가 느껴지는 사람, 나도 곧 청년층에서 중년으로 넘어갈 시기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엄청 존경받는 어른까지는 바라지 못해도, 젊은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꼰대는 되지 않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어른의 의무’가 아닐까.